한국전쟁 직전의 한국 경제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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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총독부의 무제한적 발행
1945년 8월 15일, 일왕은 항복을 선언했다.
마침내 한반도에서 일본이 물러간 것이다.
새로운 통치자 미군정이 입성하기 전까지 조선총독부는 일시간 조선의 통제를 맡았다. 어디까지나 일본인들의 안전귀국을 위한 조치였다
조선총독부는 이때 기존까지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조선은행을 통해서 미친 짓을 벌인다.
쉬지않고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낸것이다. 심지어는 종이가 부족하자 오사카에서 급히 종이를 공수해왔을 정도이다.
이를 막아야할 미군정의 하지중장은 군표를 새로 찍는 번거로움 대신 조선은행권을 그대로 쓰는 우를 범한다.
결국 도쿄로 도망가는 일본인들은 이 돈을 가지고 조선의 물건을 닥치는대로 매수했고 한가득 손에 안은채로 본국으로 도주했다.
당연히 쓸모도 없는 돈은 늘어나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감소했다.
2. 미군정의 재정적자
미군정은 돈이 부족했다. 조선에는 도와줘야 할곳도 많았고 매일마다 인천항에는 전 세계에서 귀국하는 조선인들이 끊이지 않았다.
1946년부터 48년의 단 2년동안 인구는 무려 260만명이 증가했다.
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이 부족하자 미군정은 돈을 뽑아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한다. 조선은행권은 1945년부터 48년 단 3년사이에 7배가 넘게 발행된다.
3. 공산당의 위조지폐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이는 미군정의 조작 의혹도 강하게 제기된다)
해방이후 일본인들의 재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돈을 찍어내던 윤전소가 조선공산당 남로당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이들은 10만원이라는 당시에는 엄청난 양의 돈을 위조하여 발행하였고 대다수는 남로당의 공작자금으로 사용된다.
1946년 10월에 체포된 이들로 하여금 남한 내에선 공산당에 대한 혐오분위기가 조성된다.
4. 결과
물품은 부족하고 돈만 많이 유통되자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해방직후에만 2364%라는 미친 인플레이션율을 보여주던 도매물가는 해방이후 1946년 8월 전년동기비 370%라는 더 정신나간 상승률을 보이며 새국가 대한민국을 공격했다.
미군정은 초기 자유시장제도를 도입했으나 국가경제가 건전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자유시장제도는 날뛰는 말과 같았다. 쌀은 이미 100배 폭등했고 밀과 옥수수같은 생필품들도 최소 20배 최대 80배 폭등했다.
뒤늦게 가격상한제를 실시했으나 이는 오히려 사람들이 암시장에 기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가격 상한제를 실시-> 물건있는 사람들이 물건을 안내놓음-> 암시장에서 훨씬 더 비싼가격으로 거래됨-> 그러나 물건이 있는곳은 암시장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림->물가가 계속 폭등함)
1948년 제 1공화국이 수립된 뒤에도 물가상승률과 통화량은 매년 최소 두자리이상 오르고 있었다.
5. 해소
이 문제는 최악의 방식으로 해결된다.
두명의 남자가 모스크바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지, 그 말이 사실이긴 한거요? 우리가 전쟁을 내기만하면 노동자들이 봉기한다고? 이미 빨치산은 여러번 패퇴하지 않았소.”
“당연하오 동지, 남조선 체제는 이미 경제난으로 붕괴직전에 지리산에는 우리측 빨치산들이 백만명넘게 숨어있소. 전쟁만 내시오. 그럼 삼일내로 인민민주주의를 한반도에서 실현할 수 있을거요.”
“뭐 그말이 진실이던 아니던 상관없소. 전쟁은 낼꺼니까.”
한국전쟁 최악의 전범 김일성과 박헌영이었다.
이들은 스탈린에게 전쟁전 허가를 맡으러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스탈린은 이 전쟁에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이미 전에 71번이나 거절했다. 자칫하면 세계대전이고 잘못하면 소련은 나치 독일처럼 패망한다.
그러나 그리스 문제를 두고 생각이 바뀐다.
“지금 소비에트의 국력으로는 미국은 절대 이길수 없는 상대다…
하지만 그리스문제를 보아하니 서방도 대규모 확전을 원하지 않는것 같다.
아무리 죽어나가도 우리 소비에트에겐 피해가 없는곳,
한반도에서 미국이 최대한 힘을 빼도록 해야한다.
그래야 미국이 소비에트가 차지한 이권에 눈돌리지 못하도록 막을수 있다. 설마 진다고 치더라도 어차피 한반도가 먹히면 중국이 위험하지 소비에트가 위험한건 아니니까…
전쟁을 허가한다. 잘 해보시오. 김동지!”
결국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동란 6.25가 발발한다.
실제로 한국전쟁은 급속한 재정적자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1945년 이래 인플레이션으로 발생한 엄청난 양의 돈을 빨아들였다.
또한 전쟁을 겪던 남한에 들어온 대량의 외국 물자들은 만성적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한국정부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한국정부는 점차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고통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추가
사실 우리는 한국전쟁 지원국이라고 하면 파병국들만을 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쌩판 모르는 타국에게 보내진 막대한 물자로 한국경제는 붕괴하지 않고 버틸수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은 항복을 선언했다.
마침내 한반도에서 일본이 물러간 것이다.
새로운 통치자 미군정이 입성하기 전까지 조선총독부는 일시간 조선의 통제를 맡았다. 어디까지나 일본인들의 안전귀국을 위한 조치였다
조선총독부는 이때 기존까지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조선은행을 통해서 미친 짓을 벌인다.
쉬지않고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낸것이다. 심지어는 종이가 부족하자 오사카에서 급히 종이를 공수해왔을 정도이다.
이를 막아야할 미군정의 하지중장은 군표를 새로 찍는 번거로움 대신 조선은행권을 그대로 쓰는 우를 범한다.
결국 도쿄로 도망가는 일본인들은 이 돈을 가지고 조선의 물건을 닥치는대로 매수했고 한가득 손에 안은채로 본국으로 도주했다.
당연히 쓸모도 없는 돈은 늘어나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감소했다.
2. 미군정의 재정적자
미군정은 돈이 부족했다. 조선에는 도와줘야 할곳도 많았고 매일마다 인천항에는 전 세계에서 귀국하는 조선인들이 끊이지 않았다.
1946년부터 48년의 단 2년동안 인구는 무려 260만명이 증가했다.
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이 부족하자 미군정은 돈을 뽑아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한다. 조선은행권은 1945년부터 48년 단 3년사이에 7배가 넘게 발행된다.
3. 공산당의 위조지폐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이는 미군정의 조작 의혹도 강하게 제기된다)
해방이후 일본인들의 재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돈을 찍어내던 윤전소가 조선공산당 남로당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이들은 10만원이라는 당시에는 엄청난 양의 돈을 위조하여 발행하였고 대다수는 남로당의 공작자금으로 사용된다.
1946년 10월에 체포된 이들로 하여금 남한 내에선 공산당에 대한 혐오분위기가 조성된다.
4. 결과
물품은 부족하고 돈만 많이 유통되자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해방직후에만 2364%라는 미친 인플레이션율을 보여주던 도매물가는 해방이후 1946년 8월 전년동기비 370%라는 더 정신나간 상승률을 보이며 새국가 대한민국을 공격했다.
미군정은 초기 자유시장제도를 도입했으나 국가경제가 건전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자유시장제도는 날뛰는 말과 같았다. 쌀은 이미 100배 폭등했고 밀과 옥수수같은 생필품들도 최소 20배 최대 80배 폭등했다.
뒤늦게 가격상한제를 실시했으나 이는 오히려 사람들이 암시장에 기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가격 상한제를 실시-> 물건있는 사람들이 물건을 안내놓음-> 암시장에서 훨씬 더 비싼가격으로 거래됨-> 그러나 물건이 있는곳은 암시장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림->물가가 계속 폭등함)
1948년 제 1공화국이 수립된 뒤에도 물가상승률과 통화량은 매년 최소 두자리이상 오르고 있었다.
5. 해소
이 문제는 최악의 방식으로 해결된다.
두명의 남자가 모스크바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지, 그 말이 사실이긴 한거요? 우리가 전쟁을 내기만하면 노동자들이 봉기한다고? 이미 빨치산은 여러번 패퇴하지 않았소.”
“당연하오 동지, 남조선 체제는 이미 경제난으로 붕괴직전에 지리산에는 우리측 빨치산들이 백만명넘게 숨어있소. 전쟁만 내시오. 그럼 삼일내로 인민민주주의를 한반도에서 실현할 수 있을거요.”
“뭐 그말이 진실이던 아니던 상관없소. 전쟁은 낼꺼니까.”
한국전쟁 최악의 전범 김일성과 박헌영이었다.
이들은 스탈린에게 전쟁전 허가를 맡으러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스탈린은 이 전쟁에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이미 전에 71번이나 거절했다. 자칫하면 세계대전이고 잘못하면 소련은 나치 독일처럼 패망한다.
그러나 그리스 문제를 두고 생각이 바뀐다.
“지금 소비에트의 국력으로는 미국은 절대 이길수 없는 상대다…
하지만 그리스문제를 보아하니 서방도 대규모 확전을 원하지 않는것 같다.
아무리 죽어나가도 우리 소비에트에겐 피해가 없는곳,
한반도에서 미국이 최대한 힘을 빼도록 해야한다.
그래야 미국이 소비에트가 차지한 이권에 눈돌리지 못하도록 막을수 있다. 설마 진다고 치더라도 어차피 한반도가 먹히면 중국이 위험하지 소비에트가 위험한건 아니니까…
전쟁을 허가한다. 잘 해보시오. 김동지!”
결국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동란 6.25가 발발한다.
실제로 한국전쟁은 급속한 재정적자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1945년 이래 인플레이션으로 발생한 엄청난 양의 돈을 빨아들였다.
또한 전쟁을 겪던 남한에 들어온 대량의 외국 물자들은 만성적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한국정부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한국정부는 점차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고통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추가
사실 우리는 한국전쟁 지원국이라고 하면 파병국들만을 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쌩판 모르는 타국에게 보내진 막대한 물자로 한국경제는 붕괴하지 않고 버틸수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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